흔히하는개소리

20150724

2017.06.06 18:26 - kwon recyde

돌이켜 보면 난 꽤 운이 좋았었던 것 같다.
물론 그를 짝사랑한 4년, 헤어지고 잊기까지 3년의 기간 동안은 마음고생 하고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지고 살았지만.

그를 처음 봤던 건 이십 대 초반 인터넷의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을 통해서였다.
순전히 외모만으로 이상형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생면부지였기에 그저 연예인 보듯, 그렇게 받아들였었다.

일 년이 좀 안되는 세월이 흐르고 같이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와 얘기하던 중, '소개팅 시켜줄까?'라는 말과 함께,
이상형이 어떻게 되느냐는 말에 문득 예전에 봤던 그가 떠올라 사진을 보여주니 그 친구와 같은 학교 같은 과 동기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생면부지에서 인연의 고리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이십 대의 모든 고통이 시작될지도 모른 채 나는 마냥 좋아했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세 살 연상이었다.
이미 그는 연인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소개팅 따위는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과 '아는 사이'가 될 수 있는 것이 행복했다.
첫 만남부터 무슨 객기였는지 술김에 반말을 하고 나란 존재를 어필하려 노력했다.
사실 동생들한테도 말을 쉬이 놓는 성격이 아닌 소심한 내가 그러한 행동을 했던 건 연하인 내가 그에게 그저 동생이 아닌 이성으로 보이고 싶어 발악 아닌 발악을 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몇 년간 그는 내가 알기로 세 번의 연애를 하고 그가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짝사랑만 키워나갔던 것 같다.
물론 내가 나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마 그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주인 만난 강아지 마냥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볼 때마다 꼬리를 흔들어댔으니.

몇 번의 고백 아닌 고백의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 심신이 지친 나는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그 사이 아는 형을 통해 '너를 알고 지낸 몇 년간 여자랑 같이 다니는 걸 본적이 없다.'며 반강제적으로 하게 된 소개팅을 통해 만난 한 살 어린 친구는 생각보다 대화도 잘 통하고 괜찮은 감정이 생겼다.
지난 3년간의 짝사랑에도 지친 것인지 그를 통해 짝사랑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몇 달간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게 연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덫은 그리 쉬어 벗어날 수 있던 것이 아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 지난날의 그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연애는 끝이 나버렸다.

첫 번째 이별과 동시에 나는 이 악순환을 끝내자는 심정으로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군대를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녀오고 나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군 생활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아마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 몇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고백컨데 사실 군 생활 동안 짝사랑했던 그를 잊기는커녕 몇 번의 통화와 몇 번의 편지를 통해 그 마음이 더 커진 것이 사실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쉴 틈도 없이 아는 형의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회사 근처에 자취를 시작하고 출퇴근을 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서 첫사랑 그를 마주치게 되었다.
무척 떨렸던 나와는 상반되게 덤덤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던 너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내가 다니던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일한다고 말하며 본인도 이 근처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그녀와 몇 번의 점심을 같이 먹고 집도 가까운데 언제 한번 술이나 먹자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성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로선 고백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 생각하여, 그날 고백하고 수줍은 허락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와 사귄 그 몇 년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 아니였나 싶다.
사실 알고 보니 그는 몇 가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자극적인 이야기라 써도 될까 싶지만, (...중략...) 그런 것들이 그녀에겐 일상처럼 흘러가 매일 밤 함께 있을 땐 세상의 모든 슬픔을 가진 사람마냥 울었다. 그와 사귀었던 기억을 되짚어보면 절반은 그녀의 눈물인 듯싶다.

그와 함께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취향 말투 성격까지 닮아갔다.
어찌 보면 나는 그를 사랑하기 이전에 동경하고 있던 것일지 모른다.

그런 그와 헤어지게 된 것은 순전히 내 탓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내 몸에서 이상 신호가 오고 일을 하다가도 구토를 하고 계단을 오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게 돼버리자 그제야 병원에 가보았다.
내시경을 받고 의사는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다며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하여 대학병원에서 몇 가지 복잡한 검사들과 함께 병의 원인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의사의 첫 마디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군대는 다녀오셨어요?" 이 질문의 의미는 대충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한 그와 같이 나 또한 불치병을 얻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물론 동일한 병명은 아니었지만.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절망적인 생각만 늘어나자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그는 얼마나 힘들까 하는 '나의 이기적'인 생각에 헤어지잔 말을 꺼냈다.

그 말이 내 검은 입에서 흘러나오고.
나는 그를 알고 지내면서 봐왔던 그의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그날 보았다.
누군가 내 앞에서 그토록 슬퍼하는 모습은 앞으로도 못 볼지도 모른다.

사실 이별의 고통보다 나는 그 당시 내 몸의 고통이 더 심했기 때문에 그것에 휩쓸릴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여파는 아주 잔잔하게 오랫동안 나를 옭아맸다.

병은 어차피 완치되질 못했다.
그렇게 몇 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병이 나의 일부란 것을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오래 걸렸던 것이다.

사실 그 사이 두 번 병문안을 통해 그를 볼 수 있었다.
아마 그 만남이 힘든 투병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지 않았나 싶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그를 마지막으로 본지 일 년이 좀 넘은 시점쯤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기가 꺼져있어 통화하지 못하였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전화를 해봤지만, 번번이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응답 뿐이었다.
그게 사실 내 번호가 차단돼있던 것이란 걸 알게된 건 시간이 흐르고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아마 나는 온전한 이별을 했던 게 아니였든 싶다.
그리고 얼마 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은 가지 않았으나 받질 않았다.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때쯤. '전화했었네, 잘 살고 있나 보다.'라는 그녀의 문자를 받고 바보 같게도 조금은 흥분했다.
다시 전화해봤자 안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 지난 이십 대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니가 해준 말들 모두 진심으로 고마워, 항상 건강해.'라는 그녀의 답장에.

나는 '우리는 정말 끝인 걸까.'라는 답장은 보내질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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