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안와 쓰는 일기.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요즘들어 꽤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소비에 있어서 절제하고 심플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기 위해 우선은- 옷을 사는 것을 절제하려고 되도록은 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하루 아침에 바뀌긴 힘들긴 하지만... 그것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심플해질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왜 굳이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쓸데없이 감정 소비를 해야만 하는가. 그래도 꽤나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사이인데,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싫어하게된 계기가 무엇이 되었든, 나를 그러하게 생각한다면 나 또한 더 이상 감정 소비를 할 필요성은 없다. 여기서 누가 '더' 잘못했는가에 대해서는 따질 필요가 없다. 보통 이런경우에는 쌍방과실이다.

사실은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의 정리를 하려고 했다. 요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사람들의 관계를 칼 같이 끊을 수가 없다. 나이를 먹은 탓인가... 어찌되었든, 나는 중간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믿고싶다 지금도 그러하다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쏟고 싶고, 그렇게만 살기에도 너무 짧은 삶이라 생각한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길을 가길... 아마 가끔은 마주치겠지만, 내가 당신에게 반드시 호의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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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난 꽤 운이 좋았었던 것 같다.
물론 그를 짝사랑한 4년, 헤어지고 잊기까지 3년의 기간 동안은 마음고생 하고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지고 살았지만.

그를 처음 봤던 건 이십 대 초반 인터넷의 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을 통해서였다.
순전히 외모만으로 이상형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생면부지였기에 그저 연예인 보듯, 그렇게 받아들였었다.

일 년이 좀 안되는 세월이 흐르고 같이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와 얘기하던 중, '소개팅 시켜줄까?'라는 말과 함께,
이상형이 어떻게 되느냐는 말에 문득 예전에 봤던 그가 떠올라 사진을 보여주니 그 친구와 같은 학교 같은 과 동기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생면부지에서 인연의 고리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이십 대의 모든 고통이 시작될지도 모른 채 나는 마냥 좋아했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세 살 연상이었다.
이미 그는 연인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소개팅 따위는 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과 '아는 사이'가 될 수 있는 것이 행복했다.
첫 만남부터 무슨 객기였는지 술김에 반말을 하고 나란 존재를 어필하려 노력했다.
사실 동생들한테도 말을 쉬이 놓는 성격이 아닌 소심한 내가 그러한 행동을 했던 건 연하인 내가 그에게 그저 동생이 아닌 이성으로 보이고 싶어 발악 아닌 발악을 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몇 년간 그는 내가 알기로 세 번의 연애를 하고 그가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짝사랑만 키워나갔던 것 같다.
물론 내가 나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마 그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주인 만난 강아지 마냥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볼 때마다 꼬리를 흔들어댔으니.

몇 번의 고백 아닌 고백의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 심신이 지친 나는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그 사이 아는 형을 통해 '너를 알고 지낸 몇 년간 여자랑 같이 다니는 걸 본적이 없다.'며 반강제적으로 하게 된 소개팅을 통해 만난 한 살 어린 친구는 생각보다 대화도 잘 통하고 괜찮은 감정이 생겼다.
지난 3년간의 짝사랑에도 지친 것인지 그를 통해 짝사랑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몇 달간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게 연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덫은 그리 쉬어 벗어날 수 있던 것이 아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 지난날의 그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연애는 끝이 나버렸다.

첫 번째 이별과 동시에 나는 이 악순환을 끝내자는 심정으로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군대를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녀오고 나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군 생활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아마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 몇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고백컨데 사실 군 생활 동안 짝사랑했던 그를 잊기는커녕 몇 번의 통화와 몇 번의 편지를 통해 그 마음이 더 커진 것이 사실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쉴 틈도 없이 아는 형의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회사 근처에 자취를 시작하고 출퇴근을 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서 첫사랑 그를 마주치게 되었다.
무척 떨렸던 나와는 상반되게 덤덤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던 너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내가 다니던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일한다고 말하며 본인도 이 근처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그녀와 몇 번의 점심을 같이 먹고 집도 가까운데 언제 한번 술이나 먹자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성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로선 고백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 생각하여, 그날 고백하고 수줍은 허락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와 사귄 그 몇 년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 아니였나 싶다.
사실 알고 보니 그는 몇 가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자극적인 이야기라 써도 될까 싶지만, (...중략...) 그런 것들이 그녀에겐 일상처럼 흘러가 매일 밤 함께 있을 땐 세상의 모든 슬픔을 가진 사람마냥 울었다. 그와 사귀었던 기억을 되짚어보면 절반은 그녀의 눈물인 듯싶다.

그와 함께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취향 말투 성격까지 닮아갔다.
어찌 보면 나는 그를 사랑하기 이전에 동경하고 있던 것일지 모른다.

그런 그와 헤어지게 된 것은 순전히 내 탓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내 몸에서 이상 신호가 오고 일을 하다가도 구토를 하고 계단을 오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게 돼버리자 그제야 병원에 가보았다.
내시경을 받고 의사는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다며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하여 대학병원에서 몇 가지 복잡한 검사들과 함께 병의 원인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의사의 첫 마디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군대는 다녀오셨어요?" 이 질문의 의미는 대충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한 그와 같이 나 또한 불치병을 얻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물론 동일한 병명은 아니었지만.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절망적인 생각만 늘어나자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그는 얼마나 힘들까 하는 '나의 이기적'인 생각에 헤어지잔 말을 꺼냈다.

그 말이 내 검은 입에서 흘러나오고.
나는 그를 알고 지내면서 봐왔던 그의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그날 보았다.
누군가 내 앞에서 그토록 슬퍼하는 모습은 앞으로도 못 볼지도 모른다.

사실 이별의 고통보다 나는 그 당시 내 몸의 고통이 더 심했기 때문에 그것에 휩쓸릴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여파는 아주 잔잔하게 오랫동안 나를 옭아맸다.

병은 어차피 완치되질 못했다.
그렇게 몇 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병이 나의 일부란 것을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오래 걸렸던 것이다.

사실 그 사이 두 번 병문안을 통해 그를 볼 수 있었다.
아마 그 만남이 힘든 투병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지 않았나 싶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그를 마지막으로 본지 일 년이 좀 넘은 시점쯤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기가 꺼져있어 통화하지 못하였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전화를 해봤지만, 번번이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응답 뿐이었다.
그게 사실 내 번호가 차단돼있던 것이란 걸 알게된 건 시간이 흐르고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아마 나는 온전한 이별을 했던 게 아니였든 싶다.
그리고 얼마 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은 가지 않았으나 받질 않았다.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때쯤. '전화했었네, 잘 살고 있나 보다.'라는 그녀의 문자를 받고 바보 같게도 조금은 흥분했다.
다시 전화해봤자 안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 지난 이십 대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니가 해준 말들 모두 진심으로 고마워, 항상 건강해.'라는 그녀의 답장에.

나는 '우리는 정말 끝인 걸까.'라는 답장은 보내질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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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고동색의 일요일 아침은 진짜 명곡인 것 같다. (최소한 내게는) 이 노래를 처음 접한게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서현역에 위치했던 소리나라에서 씨디를 구입하여, 학교 수업시간에 몇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음악의 무서움이란게,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당시의 감정이 더이상 선명히는 아니지만, 희끗희끗 난다는 점이다. 그 때 좋아했던 첫 사랑의 샴푸냄새라던가, 교실 창문 커튼 사이로 들어오던 3교시 오전의 햇살 같은 것들. 점심시간 운동장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나와는 반대로 활동적인 친구들의 격렬한 몸싸움을 구경하던 그런 기억들 말이다.


지난 첫사랑도 유부녀 이거나 애엄마가 되었을테고, 아마 그때 쓰던 샴푸는 더 이상 쓰지 않겠지. 서현역 소리나라도 이미 진작 망해 없어졌고, 나 또한 제작년 이센스의 에넥도트 한정판을 예약 구입한 것을 마지막으로 씨디를 산 적이 없다.(물론 이 앨범도 정말 오랜만에 산 씨디 구입이다.)


다른건 다 변했지만, 그래도 이 노래는 변함없이, 내게 있어 그때도 지금도 좋은 음악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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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6집이 곧 나온다.

이번엔, 정말 나온다.


2008년도 군시절 누자베스의 modal soul과 함께 나를 위로해줬던, 언니네 이발관 5집은 내 인생에 큰 의미로 남아있다.

호소력있는 멜로디 라인부터,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이석원의 가사는 곱씹을 수록 절절히 공감되고,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했던 상처를 치유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의 마음 속에도  지울 수 없는 사람 있었지 소나기처럼 왔다 가버린 바래선 안될 것을 바랬던 죄로 나 이렇게 살아 가게 되었지'


-아마 당분간은 이 앨범을 계속 반복해서 들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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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슈구란 것을 사보았다. 사건의 발달은 이러하다. 몇일 전 굿넥에 갔다가, 술을 먹고 굿넥aka동묘아저씨가 내일 블링프리마켓에 셀러로 참가한다며 주섬주섬 옷을 보여준게 화근이였다. 그 옷의 무덤에서 나는 추억의 에어포스1 co.jp aka코즙을 발견하였다. 술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그 신발을 사버렸고, 지갑에 있던 전재산 7만 몇천원을 손에 쥐어 주었다.


산 것 까진 좋았다만, 기존에 슈구가 칠해져있던 신발인터라 나는 원래 슈구를 싫어하는 사람이기에 그 것을 다 띄어버렸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슈구를 다 띄니 비참한 밑창이 헐벗은 채 나를 반겼다. 하하... 작년 생일에도 이 친구가 줬던 모자를 집에 와서 보니 곰팡이가 슬어있던 것이 생각나 이제는 그러려니 할 법도 하다. 아무튼, 이 비참한 밑창으로 이 신발을 신고 다니긴 힘들 것 같다고 판단하여, 특단의 조치로 어쩔 수 없이 슈구를 다시 발라 신어야겠다고 나 스스로와 합의한 것이다.


이태원 가나다장터에서 슈구를 만칠천원에 구입한 뒤, 세번에 걸쳐 얇게 슈구칠을 해줬다. 생각보다 슈구의 양이 많기에 럭스포스도 함께 발라줬다. 평생 슈구칠을 하지 않던 사람이, 도대체 무슨 신발이길래 슈구칠까지 하며 신으려 하냐면, 내가 살면서 똑같은 디자인의 신발을 두번 이상 산게 딱 세가지 있는데(참고로 반스, 컨버스 제외) 나이키 에어포스1 co.jp와 나이키 에어포스1 럭스로우(메이드인 이태리) 마지막으로 아디다스 슈퍼스타 런디엠씨이다. 최근에 나의 두번째 런디엠씨는 사망하시어 보내드렸다. 럭스로우도 지금 신고있는게 두번째고, 코즙은 이번이 세번째 나와 인연을 가지게 된 녀석이다.


사실상 지금은 신을 신발도 많고, 어렸을 때처럼 좋아하는 신발을 여러날 신으며 애지중지하며 그럴 시기도 지났지만, 뭔가 이 녀석들은 신발이라는 본질적인 용도보다는, 나의 이십대를 추억하게 만드는 것들이라 그에 대한 존중의 마음에 내가 평생 사보지 않았던 슈구까지 사게끔 만든 것 같다.


-술이 왠수다...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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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숫자를 말하자면, 6과 9를 좋아한다. 럭키세븐으로 불리며 행운을 뜻하는 숫자인 동시에 한주​(one week)를 의미하는 7. 그 전의 미완의 수인 6과, 완성의 숫자로 볼 수 있는​(1.한자리에서 두자리로 넘어가는 수. 2.손가락과 발가락의 총 갯수. 3.성경에 나오는 십계) 10에서 하나가 부족한 미완의 숫자인 9를 좋아한다.

이토록 미완의 숫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이 미완의 사람이기 때문에 동질감에 이끌리는 것 아닐까.

미완의 숫자인 6과 9가 만나면 비로소 완성의 수인 69가 된다. 69는 써놓고 뒤집어서 봐도 69다. 바로 봐도 69고 거꾸로 봐도 69이니, 이보다 완벽한 수가 있을까? 6과 9가 결합이 되면 무한을 의미하는 뫼비우스의 형태가 된다.

미완에서 무한으로. 아직 완성 되지 않았기에 무엇이 될지 예측할 수 없고 끊임없이 상상할 수 있는 무한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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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은 전이된다. 나는 내가 태생이 우울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우울한 사람이었기에, 내게 전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사실 우울한 쪽보단 고독한 편인 사람이다. 천성이 단체 모임과 생활에 맞지 않게 자랐다.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기도 서투르다. 될 수 있다면, 혼자 있고싶다.

혼자 있는 시간엔 이런 저런 것들을 한다.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고 음악을 듣는다. 명상을 하다가 망상으로 넘어가는 시간도, 혼자 있을 때 말고는 할 수 없다.

요즘은 우울할 겨를이 없다. 우울한 사람들은 그들이 먼저 내 곁을 떠나거나, 내가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 우울함의 반대는 절대, 행복함이 될 수 없다.

우울하지 않다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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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서 올해까지, 가지고 있던 꽤 많은 옷을 팔았지만. 미련을 못 버렸던 꽤 많은 제품은 소장하고 있었다. 마치 최후의 보루처럼. 언더커버의 명작 제품들이나, 더블탭스의 클래식한 제품들 등 소장가치가 있지만, 오랜 시간 입지는 않았던 것들을 위탁판매 식으로 옷을 한 번에 넘겼다. 나이를 먹고 나니 사진을 다 일일이 찍어서 판매 글을 올리고 판다는 행위가 번거롭고 힘들게 되었다. 어렸을 땐 정말 열심히도 그래왔는데.

28인치 캐리어를 꽉 채우고도, 부족하여 그로서리 스토어의 대형 토트백에 나눠서 전달한 후, 집 앞에 있는 커피숍 릴리브에서 커피 한잔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니 그보다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나잇대에 했던 고민들이 내가 했던 고민과 닮았다는걸 많이 느꼈다. 그 친구의 말에서 나도 새로운 걸 배우고, 그 친구도 나의 말에서 새로운 걸 배운 유익한 시간이었다.

내 젊은 친구들은, 내가 그 나잇대에 했던 안 해도 될 실수들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실수들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내가 더 좋은 삶을 살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사실 이러나저러나 거기서 거기인 삶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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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어느 한 패션잡지에서 본 스트릿 스냅에서 백발의 여성 두 분을 본 적이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톤으로 통일한 채 같은 듯 다른 스타일링을 보여준 그 두 명은 아마도 오랜 친구일 것이라 예상됐다. 꼼데가르송의 제품들로 차려입은 그 두 명은 모던하면서 아방가르드한 분위기 코디네이션을 연출하여 마치 오랫동안 꼼데가르송을 즐겨 입은 듯한, 매우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복장이었다.


사실 나는 꼼데가르송을 좋아하진 않는다. (라는 말이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꼼데보단 요지 쪽에 취향이 맞는다고 하고 싶다. 어쨌든 위에 저 일화를 언급한 것은, 1969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전개가 되는 레이 가와쿠보의 꼼데가르송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무드로 전혀 이질감 없이 그 브랜드의 색감. 아이덴티티를 간직한 채 몇십 년이고 브랜드를 전개해왔다. 그것은 꼼데의 아카이브만 봐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위에 말한 백발의 두 여인도, 아마 젊은 시절부터 꼼데를 입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입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하며, 브랜드(디자이너)와 함께 늙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멋진 일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내게 있어 저 두 여인의 꼼데가르송 같은 존재는 더솔로이스트이다.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것은 무론 멋진 디자인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그 브랜드에 담겨 있는 디자이너의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브랜드의 옷을 잘 이해하고 입을 수 있다. 디자이너가 의도한 그대로-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나는 타카히로 미야시타의 팬이 되고 난 뒤, 양말을 뒤집어 신는다. 양말 안쪽에 봉제 마감 부분의 튀어나온 부분이 불편하여 뒤집어서 매끈한 부분으로 감싸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봉제 마감 부분은 바깥쪽으로 나오고 한층 편한 착용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작은 발상은 타카히로 미야시타의 더솔로이스트 브랜드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봉재를 바깥으로 노출하고 피부와 맞닿는 부분을 매끈하게 만들었다. 이런 작은 디테일 같은 디자이너의 철학에 마음이 동하여, 그의 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백발의 노인이 될 때, 지금처럼 더솔로이스트의 옷을 입고, 그 브랜드와 함께 늙어가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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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그 것을 행함에 있어 내면적으로 확실한 의도가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면적으로 멋있느냐-는 그 후의 얘기인 것 같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외면적으로 멋이 있고 없고는 각각의 취향의 차이가 있늘 수도 있고, 시대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한국에는 의도가 없는 것들이 많다. 사실상 그들이 추구하는 의도는 그저 make money.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그저 적당히 잘나가는 -유행의 것들을 버무려 그럴싸하게 포장해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자기 만의 것을 하는 사람은 늘 대중들에게 외면 받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질 못했다. 그렇기에 이 문화가 지금까지 비주류로 치부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하지만, 몇몇의 비주류들은 주류가 된 것들이 있고 그래도 자신이 추구하는 의도를 잃지 않은채 신념을 꼿꼿이 세우고 있는 것들도 분명 있다. 근데 나는 그런 흐름자체가 썩 좋다고 보지만은 않는다. 이건 그냥 나만의 생각이지만, 그런 것들을 소비하는 대중들이 대채적으로 멋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막연하게 싸잡아 비하하고자 하는 소리가 아니다.

대부분의 소비자. 대중들은 사실상 그 문화나 브랜드에 대해 이해가 없이 그저 잘 나가기 때문에 소비하는 정도의 의식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진정으로 크리에이티브한 것들에는 분명한 의도들이 들어가있다. 물론 그 의도들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 것은 흐름이고 분위기이며, 결과적으로 스타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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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중이던 제품 몇 가지가 팔렸다고, 그새 신나서 쇼핑을 했다. 라곤 하지만, 사실상 충동구매나 진배없다. 그래도 내가 생각했을 때 엄청 싸게 샀다고 생각하며 자위하고 있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없어도 잘 사는데 왜 또 산 거지 라는 자괴감도 드는 건 사실이다. 뭐 어쨌든 이미 산걸 어쩌겠느냐마는. 그냥 즐겨야겠다.


옷을 좋아하기 시작한 이십 대 초반쯤 무렵, 갖고 싶은 옷들이 있어도 비싸서 못 샀던 것들이 많았다. 가끔 호기심에 가품을 구매도 해봤었지만, 그 조악한 퀄리티에 혀를 내두르며 이내 옷장 구석에 처박히고 잊고 지낸 게 대부분이다. 때때로 입으면 눈치 못 챌 나름 고퀄리티의 가품도 나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쁜 옷이라도 가품이 있으면 사지 말자는 법칙을 만들었다.


사실상 대부분 가품이 나오는 제품들은 유행하는 옷들이 대부분이므로, 요즘 나오는 것들로 예를 들자면, -베트멍 -이지 -피어오브갓 -아크네 -등등 따위의 것들 아니겠느냐마는 나의 심정으론 (정품 가격 기준) '왜 저 돈 주고 저 옷을 사지...' 라는 심정이라. 내 눈엔 안 예뻐서 다행이야- 라며 위안한다.


이번에 구매한 것들도 더솔로이스트의 제품 몇 가지들을 구매했는데,(fact1.슬슬 내 옷장의 대부분이 더솔로이스트의 제품들로 채워져가고 있다.) 더솔로이스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철학이나 애티튜드를 리스펙트하는 것도 있지만, 옷 자체에서 나타나는 디테일이나 마감 봉제방식, 흔치 않은 부자재 선택과 훌륭한 원단들을 사용한 점들이다. 그러면서 가격이 미친 듯이 비싸지 않은 점. 물론 비싸긴 하지만, 명품들에 비하면 감사한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더불어 내가 옷을 구매할 때 추구하는 법칙 중 하나인, 가품이 있는 제품은 사지 않는다- 에 부합하기도 한다. 절대적으로 더솔로이스트의 제품들은 가품을 만들기가 애매하다. 사실상 가품을 만들면 그 모양새도 구현하기 힘들뿐더러 절대적으로 대중들에게 유행할 디자인들이 아니므로 하수 동대문 짝퉁 파는 병신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이 블로그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옷들에 대해 나름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다. 소장 중인 옷들에 대한 리뷰라던지. 지금은 잠정 중단 중인 프로젝트 recydress('-i dressed better than your boyfriend.')도 http://wear.jp/recyde/ 와 함께 연계해서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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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상원 2017.09.27 20:32 신고

    진짜 당신은 제가 느꼇을때 정말 정말 정말 저에게 자극을 주는 사람입니다..

더솔로이스트의 러프아웃진(밑단 절개 마감을 하지 않고 내추럴하게 연출한 독특한 디자인의 레더팬츠)을 예전부터 사고 싶었다. -꽤나 예전부터. 아마 2-3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

그것보다 앞서 사실 레더팬츠 하나쯤은 갖고 싶다는 생각에 리바이스, Lee 등의 오리지널 디자인부터 시작하여 내가 애정하는 앤드뮐이라던가 다양한 브랜드의 레더팬츠들을 찾아봤지만, 이건 내 것이다.라는 것이 없던데 문제였다.

그러던 와중에 눈에 들어왔던 것이 타카히로 미야시타의 더솔로이스트에서 나온 러프아웃진에 매료되었었다. 사실상 몇번이나 사려고 생각은 해왔지만(사실 살 기회도 꽤나 많았다)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던 문제는 비싼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비싸서 못 샀다. 라는 변명은 다른 비싼 제품들도 때때로 사는 나에게 큰 변명이 아니었단 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러프아웃진이 구매로 연결되지 않았던 제일 큰 이유는. 일반인의 착용 샷을 쉽게 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바지 자체로만 보면,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듯한 유려한 실루엣과 쫀쫀해보이는 레더의 질감이라던가... 완벽한 레더팬츠라고 생각이 들게끔 하는 완성도이다. 다만, 이상하리만치 이 러프아웃진 만큼은 착용 샷을 보기가 드물다.

실제로 더솔로이스트의 리메이크진(리바이스를 리폼하여 제작된 데님으로 베트멍의 리메이크진 보다 2-3년은 먼저 앞서나갔던 디자인)의 경우는 비교적 다양한 사람들의 착용 샷을 접하기가 쉬웠고, 실제로 구매로 이어졌을 때 착용시 만족감이 매우 높은 제품이었다. 리메이크 진의 경우 색깔별로 네 가지 모델을 소장 중이기도 하다.

쇼핑에 관해서는 중증 중독자로 공식적인 인증이 된 입장이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갖고 싶은데 구매로 안 이어지는 것들이 있다. 아마도 절실함이 부족하지 않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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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다녀왔다가, 감기에 걸렸다.
아주 독한 감기에... 처음엔 목이 갈라질듯 아프다가 코가 막히고, 서울에 와서는 몸살로 이어졌다.

겨울이 싫다. 늘 느끼는거지만, 물론 여름도 싫다.
어느게 더 싫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겨울이다.
이유를 찾자면 난방비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다시 티스토리로 넘어왔다.
일년만인 것 같다. 이미 예전 포스팅들은 다 삭제되었지만, 이 곳은 뭔가 나에게 있어 고향 혹은 안식처같은 느낌이다. 네이버 블로그를 하면서 늘 안맞는 옷을 입은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 곳에,
아무도 읽지 않게 될 글을,
온전히 나 혼자서.

그렇게 묵묵히 써내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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